틱낫한 스님의 "아! 붓다"


삼보(三寶)

이번 생에 가야할 길을 보여주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이해와 사랑의 길인
다르마에 귀의합니다!

화합과 깨달음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부처님, 법 그리고 승가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에서 근본적인 수행의 자리를 차지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시고
미소를 지은 채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앉아 계시며
이해와 자비의 살아 있는 원천이신
부처님은 길을 보여주신 스승님!

무지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삶으로
다시 인도해주는
다르마는 청정한 길!

기쁨을 누리고
해탈을 이루며
삶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승가는 아름다운 공동체!



삼해탈문(三解脫門)

3법인은 공(空, shunyata), 표시 없음(無相, animita) 그리고
목적 없음(無願, apranihita)의 3해탈문에 들어가는 데 쓰는 열쇠다.
모든 불교 종파는 3해탈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다.
3해탈문은 세 가지 집중, 즉 삼삼매(三三昧)라고도 부른다.
이 세 가지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삼매 속에 머물며
두려움, 혼란 그리고 슬픔을 여의게 된다.



사성제와 팔정도









12 연기

12연기(緣起, 
pratitya samutpada
글자 그대로 하자면 '사물들은 의존을 통해 생겨난다'는 뜻)는 
심오하고 훌륭한 가르침이자 모든 불교학과 수행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를 원인과 결과의 가르침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그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원인과 결과를 별도의 실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원인은 늘 결과에 앞서고 하나의 원인은 하나의 결과를 산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기의 가르침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는 동시에 일어나고(生起, samutpada) 
모든 것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의 결과물이다.

부처님은 연기를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고 계신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 
이것이 생겨나기 때문에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부처님이 연기를 가르치시는 것을 듣고 난 다음 아난다는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연기의 가르침은 심오하고 미묘해 보이기는 하지만, 
매우 간단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거라. 
연기의 가르침은 실로 심오하고 미묘한 것이다. 
연기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곧 부처님을 볼 수 있는 법이다."

무상의 가르침은 연기의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다양한 원인과 조건이 받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와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조건은 우리가 아닌 것에서 나온다. 
무상과 무아를 알게 되면 연기를 알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연기에 입각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의 지침 또는 조언이 아니라 
사물의 발생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보려는 경향 때문에 
열두 가지 고리는 여러모로 오해되어 왔다. 그중 하나는 
그것을 생과 사가 있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처님이 대개 노사로 12연기를 시작하고 있는 까닭은 
고통을 알고 그 뿌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사성제의 가르침과 수행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12연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는 심신의 부정적인 상태의 연기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상태의 연기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 말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부처님은 무명이 사라지면, 밝은 깨달음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12연기를 공부하는 것은 
무명의 요소를 줄이고 밝음의 요소를 늘리기 위해서이다. 
무명이 줄어들면, 갈망, 증오, 자만, 의심 
그리고 갖가지 견해 역시 줄어들게 되고 
사랑, 연민, 기쁨 그리고 평정심이 늘어나게 된다. 
이것은 12가지 고리 모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11세기 베트남의 한 승려가 어느 선사에게 물었다. 
"생사를 초월하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생사의 한 가운데다." 
열반을 구하기 위해 생사를 포기한다면, 열반을 구하지 못하게 된다. 
열반은 생사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반은 생사 그 자체다. 
그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는 문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생사가 되고, 저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열반이 되는 것이다.

이제 12연기의 가르침을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때가 되었다. 
12연기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도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전념의 씨앗




[자료 출처 : "틱낫한 스님의 아! 붓다"  틱낫한 지음 | 진현종 옮김 | 반디미디어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