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펌] "아! 붓다" 『대사십경』맛찌마니까야117


대사십에 관한 말씀(大四十經, Mahacattarisaka Sutta)



이것은 내가 들은 이야기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수습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 비구들이여."
그러자 여러 비구들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오, 스승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거룩한 정정(聖正定)과 그 원인
그리고 그에 따르는 요소들에 대해서 가르치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동안 주의를 기울여 잘 듣도록 하라."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비구들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정정을 꾸미는 원인과 그에 따르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근과 정념이다.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것(心一境性)에 앞의 일곱 가지 요소가 따를 때,
그것을 그 원인과 그에 따르는 요소들로 꾸며진 거룩한 정정이라고 한다.


앞서 한 말을 보면, 정견이 처음에 나온다.
왜 정견이 처음에 나오는가? 잘못된 견해가 있을 때 
그것이 잘못된 견해라는 것을 알면 그것은 이미 정견이다. 정견이 있을 때
그것이 정견이라는 것을 알면 그것 역시 정견이다. 잘못된 견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보시와 공양이나 희생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보는 견해다.
그것은 건전하거나 건전하지 못한 행동의 과보가 없다고 하는 견해다.
그것은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고 저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견해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존재도 없고, 스스로 생겨나는 존재도 없다고 하는 견해다.
그것은 도를 이루었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더나
스스로 특별한 깨달음을 경험했거나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밝게 해줄 수 있는 비구나 바라문은 없다고 하는 견해다.

비구들이여, 
정견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두 종류의 정견이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有漏) 정견이 있다.
그것은 공덕을 낳기는 하지만 여전히 집착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無漏) 고귀한 정견이 있다.
그것은 세속을 초월한 것으로 팔정도의 한 요소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는 정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보시와 공양과 희생에 효과가 있다는 견해다.
그것은 건전하고 건전하지 못한 행동의 과보가 있다는 견해다.
그것은 이 세상도 존재하고 저 세상도 존재한다고 하는 견해다.
그것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존재도 있고 스스로 생겨나는 존재도 있다고 하는 견해다.
도를 이루었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거나
스스로 특별한 깨달음을 경험했거나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밝게 해줄 수 있는 비구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는 견해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정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마음이 고귀하고 새는 법이 없으며 팔정도를 갖추고
팔정도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지혜, 
즉 오근(五根)의 하나로서의 지혜와 오력(五力)의 하나로서의 지혜
그리고 택법각지(擇法覺支)로서의 지혜를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고귀하고 새는 일이 없고 세속을 초월하고 팔정도의 하나인 것이다.

잘못된 견해를 버리고 정견을 취하고자 노력하는 이는 정근을 한다.
전념을 통해 잘못된 견해를 버리고 정견에 머무는 이는 정념을 얻는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정견의 주위를 맴돈다. 그것들은 정견, 정근과 정념이다.


앞서 한 말을 보면 정견이 처음에 나온다. 왜 정견이 처음에 나오는가?
잘못된 생각이 있을 때 그것이 잘못된 생각인 줄 알면 그것은 이미 정견이다.
정사가 있을 때 그것이 정사인 줄 알면 그것 역시 정견이다.
잘못된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 증오와 위해로 통하는 생각이다.

정사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두 종류의 정사가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사가 있다.
그것은 공덕을 낳지만 여전히 집착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고귀한 정사가 있다. 
그것은 세속을 초월한 것으로 팔정도의 한 요소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 증오와 위해를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고 공덕을 낳지만 여전히 집착에 떨어지고 마는 정사다.

고귀하고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고 
세속을 초월하고 팔정도의 한 요소인 정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마음이 고귀하고 새는 법이 없으며 팔정도를 갖추고
팔정도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사택(思擇), 심구(心求),
사유(思惟), 전주(專注), 전정(專精)과 어행(語行)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고귀하고 새는 법이 없고 세속을 초월하고 팔정도의 하나인 정사다.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정사를 취하고자 노력하는 이는 정근을 한다.
전념을 통해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정사에 머무는 이는 정념을 얻는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정사의 주위를 맴돈다. 그것들은 정견, 정근과 정념이다.


앞서 한 말을 보면 정견이 처음에 나온다. 왜 정견이 처음에 나오는가?
잘못된 말을 할 때 그것이 잘못된 말이라는 것을 알면 그것은 이미 정견이다.
정어를 할 때 그것이 정어인 줄 알면, 그것 역시 정견이다. 
잘못된 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거짓말, 비방, 거슬리는 말과 경솔한 말이다.

정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두 종류의 정어가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어가 있다.
다음으로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고귀한 정어가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거짓말, 비방, 거슬리는 말과 경솔한 말을 자제하는 것이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정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마음이 고귀하고 새는 법이 없으며 팔정도를 갖추고
팔정도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네 종류의 잘못된 말을
삼가고, 그만두고, 참고, 자제하는 것이다.


앞서 한 말을 보면 정견이 처음에 나온다.  정견이 처음에 나오는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잘못된 행동인 줄 알면 그것은 이미 정견이다.
정업을 행할 때 그것이 정업인 줄 알면 그것 역시 정견이다.
잘못된 행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생, 투도와 사음이다.

정업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두 종류의 정업이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업이 있다.
다음으로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고귀한 정업이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생, 투도와 사음을 자제하는 것이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정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마음이 고귀하고 새는 법이 없으며 팔정도를 갖추고
팔정도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잘못된 몸으로 하는
행동을 삼가고, 그만두고, 참고, 자제하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그만두고 정업을 행하고자 노력하는 이는 정근을 한다.
전념을 통해 잘못된 행동을 그만두고 언제나 정업을 행하는 이는 정념을 얻는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정업의 주위를 맴돈다. 그것들은 정견, 정근과 정념이다.


앞서 한 말을 보면 정견이 처음에 나온다. 왜 정견이 처음에 나오는가?
잘못된 생계를 보고 그것이 잘못된 생계인 줄 알면 그것은 이미 정견이다.
정명을 보고 그것이 정명인 줄 알면 그것 역시 정견이다.
잘못된 생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선적이고 분명하지 않은 말을 늘어놓고,
점을 봐주며, 사기치고 욕심을 부리고 이자놀이를 하는 것이다.

정명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두 종류의 정명이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명이 있다.
다음으로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고귀한 정명이 있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정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귀한 제자가 잘못된 생계를 그만두고 정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새는 것이 완전히 멈춘 정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마음이 고귀하고 새는 법이 없으며 팔정도를 갖추고
팔정도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잘못된 생계를
삼가고, 그만두고, 참고, 자제하는 것이다.

잘못된 생계를 그만두고 정명을 취하려고 노력하는 이는 정근을 한다.
전념을 통해 잘못된 생계를 그만두고 정명에 머무는 이는 정념을 얻는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정명의 주위를 맴돈다. 그것들은 정견, 정근과 정념이다.


앞서 한 말을 보면 정견이 처음에 나온다. 왜 정견이 처음에 나오는가?
정사는 정견을 가진 사람에게서 생긴다.
정어는 정사를 하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정업은 정어를 하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정명은 정업을 하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정근은 정명을 하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정정은 정념을 하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정각(正覺)은 정정을 하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정해탈(定解脫)은 정정를 가진 사람에게서 생긴다.
그리고 정해탈은 정지(正智)를 가진 사람에게서 생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배우는 과정 중에 있는 수행자들은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고,
아라한인 수행자는 열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앞서 한 말을 보면 정견이 처음에 나온다.
왜 정견이 처음에 나오는가? 정견을 가진 이는 잘못된 견해를 극복한다.
잘못된 견해에 기인하는 그밖에 다른 모든 불건전하고 잘못된 상태 역시 극복한다.
그리고 정견에 기인하는 모든 건전한 상태를 성취하고자 수행한다.

정사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생각을 극복한다.
정어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말을 극복한다.
정업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행동을 극복한다.
정명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생계를 극복한다.
정근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노력을 극복한다.
정념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전념을 극복한다.
정정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집중을 극복한다.
정지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지혜를 극복한다.
정해탈 등등을 하는 이는 잘못된 해탈을 극복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건전한 것을 받쳐주는 스무 가지 요소가 있고
불건전한 것을 받쳐주는 스무 가지 요소가 있다.
대사십에 관한 설법이 이제 막 구르기 시작했으니
비구, 바라문, 신, 마라, 브라흐마 
또는 이 세상의 그 누구라 해도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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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틱낫한 스님의 아! 붓다"  틱낫한 지음 | 진현종 옮김 | 반디미디어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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